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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 되는 날이었다. 이를 기념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펼쳐진 축제 뉴스를 보니 7년 전 아내와 함께 유럽을 배낭여행하던 때가 떠올랐다. 유학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세간을 정리해 마련한 돈으로 한 여행이라 넉넉하지 않았다. 보통은 가이드북 한 권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간혹 주요 도시에서는 대학생들이 관광객을 모아 무료로 해설해주는 자리에 끼곤 했다. 베를린은 독재자와 학살, 전쟁과 통일의 역사가 잠든 곳이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온종일 걸어 다녔으나 피곤한 줄 몰랐다.


베를린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다는 가이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은 동독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첫 기자회견이 예정된 날이었단다. 장벽 붕괴는 이 기자회견에서 한 이탈리아 기자가 던진 여행자유화 관련 질문에 대한 중앙위원회 대변인의 실수에서 촉발되었다고 했다. 정작 이 대변인은 여행 법안을 다룬 중앙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으나 서기장으로부터 전달받은 쪽지를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발표해버린 것이다. 동독인의 여행자유화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초안에 불과했고 발표하더라도 다음 날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수'에 우연이 더해졌다. 그렇게 끝나는 기자회견 말미에 한 기자가 이러한 조치가 언제부터 적용되는지 물었고 대변인은 별 생각 없이 "지금 즉시"(Now, right now)라고 답변했단다. 물론 독일어로 말했겠지만 이를 영어로 설명하는 독일 대학생 가이드는 흥분한 듯 보였다. 문제는 이 기자회견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시청하던 동베를린 사람들은 하나둘씩 국경 검문소로 몰려들었고 이런 내용을 전달받은 바 없는 국경수비대는 총을 들고 제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들었다며 국경을 열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문이 열렸다. 그렇게 동베를린 국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달려간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자유를 요구하고 국경을 건너 서베를린으로 왔으나 막상 할 것이 없었단다. 기자회견 시작이 오후 6시였으니 동베를린 사람들이 서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고 딱히 해야 할 것도 마땅히 할 만한 것도 없어 막막했을게다. 그때 그들이 달려간 곳은 극장이었다고 했다. 동독 사람들도 서독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서독에서 개봉한 영화 <더티 댄싱>에 대한 호기심이 무척 컸단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더티 댄싱>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최고 흥행작이었다.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우리도 서독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다. 우리는 <더티 댄싱>을 원한다"고 소리칠 정도였단다.


베를린 구 박물관 회랑 바닥에 앉아 마치 목격자의 증언인양 열심히 들었던 그때가 벌써 7년 전 일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더티 댄싱>에 대한 이야기는 그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사실 확인차 구글링을 해봤다. 2006년 9월 1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에 폴리 버논 기자가 쓴 "헤이 베이비 – 이제는 우리가 모두 스웨이지다"(Hey Baby - we're all Swayze now)라는 기사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심지어 <더티 댄싱>의 제작자는 이 영화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도왔다고 주장했단다. ㅎㅎ


뱀발) 당시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디지털 사진임에도 파일 오류로 쓸만한 게 별로 없다. 파일 정보에 2007년 7월 30일이라고 되어있는 위 사진에서 마치 배우처럼 독일 군복 상의를 입고 양팔을 벌린 채 열정적으로 역사의 한 장면을 설명하는 그가 가이드다.


  • 굿민

    2014-11-22 11:45
    우리나라도 그렇게 우연히 이루어졌으면... 하지만, 그전에 일어나야할일들이 많이 있겠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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