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mm의 돌

#1
지난 화요일 새벽 5시 30분, 아마 그쯤 되었을 것이다. 어슴푸레 동트는 분위기에 잠이 깼다. 평소보다 30분쯤 이른 시간이었으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일어났다. 아랫배가 좀 불편해서 간만에 조깅이나 하려고 양말을 찾아 신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갑자기 옆구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점점 강도가 세졌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통증이었다.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어렸을 적부터 웬만한 상처는 한 번쯤 다 겪어봤다 생각했지만 이건 도무지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아니라 옆구리가 아프다, 그것도 안에서. 뭐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버티다 겨우 아내를 불렀다.


가느다란 소리에도 아내는 놀라울 정도로 즉각 반응했다. 맞다. 늦잠을 즐겨서 그렇지 예민한 사람이지.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을 직감했는지 불을 켜고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선 배 아플 때 먹는 약을 달라고 해서 먹었으나 통할 리 없다. 배와 가깝기는 하지만 진앙은 옆구리였으니.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그때 의사인 매형이 떠올랐다. 이른 시간이라 미안했지만 그걸 따지기에는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정상적인 통화가 불가능한 나를 대신해 아내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원 생중계가 이어졌다. 매형은 매우 간결하게 그리고 적확하게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진단은? 그거 '요로결석' 같은데. 처치는? 우선 진통제 먹고 기다렸다 병원 문 여는대로 비뇨기과로 가라.


#2
참을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최소한, 고통의 원인을 알았고, "문 여는대로" 가라는 걸 보니 죽을병은 아니구나 하는. 더불어 119를 부를까 하는 급한 마음에 약간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구급차 불러 응급실 가면 돈깨나 들 텐데 일단 참아보자 하는. 문제는 그게 6시 반 언저리였고 병원 문은 9시 반께나 연다는 거였다. 또한, 매형이 전화를 끊기 전 돌 깨는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단다. 그때부터 아내의 스마트폰 검색 신공이 발휘되었다. 금산 읍내에는 그런 기기가 없는 듯하니 대전으로 가자며 몇 군데 후보를 물색하더니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전화해 예약했다. 내 아내가 이렇게 과단성 있는 사람이었다니. 위기는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기억이 선명치 못하다. 자동차 뒷좌석에 널브러져 쿠션과 모포를 감싸 안고 사투를 벌이다 타이어의 작은 떨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병원 지하 주차장에 아내가 차를 대고 나오도록 머릴 바닥에 대고 겸손하게 기다렸으며, 병원 입구에서 날 보고 반기는 남자 간호사를 발견하고는 아주 잠깐 기쁜 마음에 미소 지은 후 엉덩이에 몇 방의 주사를 맞았고,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검사를 받은 후 '체외충격파쇄석기'라는 이름의 쇠망치가 내 넓적다리 위쪽을 때리는데 머리에 씌워진 헤드폰에서는 사랑의 인사가 관현악으로 흘러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간헐적으로 떠오른다. 친절한 의사는 날 보더니 4.5mm의 결석이 있다고 했고, 재발 확률이 70%쯤 되니 다음번에도 찾아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3

참, 그게 다가 아니다. 돌이 깨졌을 것이나 몸속에 있으니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1주일간 약을 먹어야 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다음 주에 병원을 재방문하라며 자동 예약 서비스까지 이뤄졌다. 다시 아플 수 있어 강력한 진통제를 4회분 추가 처방했으니 필요시 복용하고 응급상황일 경우를 대비해 써준 소견서는 가까운 병원에 보여주고 주사를 맞으라고도 했다. 돌이 깨진 탓인지 아니면 약 기운에서인지 허공을 걷던 나는 의사의 경고가 경험의 산물임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필요 없을 것 같았던 진통제를 바로 그날 밤부터 먹었고 하루에 하나씩 아껴 먹으며 옆구리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이제야 지옥문 언저리를 벗어나 상황이 객관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좁쌀만 한 돌 하나에 벌벌 떠는 허우대 멀쩡한 인간이라니. 몽롱한 상태로 스치듯 들었던 말들도 살짝씩 기억난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자신이 경험한 상황을 조금씩 복기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오빠가 엎드려서 뭐라고 회개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 그걸 보고는 이 사람이 진짜 많이 아프구나 했어." 어제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주위가 더욱 푸르다. 싹도 나고 꽃도 피고 생동감이 넘친다. 마당에 뿌린 잔디씨를 덮은 차광막을 슬쩍 들춰보니 그 안에도 새싹이 쭉쭉 올라오고 있다. 야, 이렇게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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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도바람

    2016-04-29 01:04
    남은 아파 죽겠는데, 웃으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죄송!!! 똑같은 상황이 우리집에도 있었어요. 엄마 간병하러 대전에 있던 어젯밤, 하루종일 내린 비로 물가에 노란 송화가루가 고왔던날, 남편이 옆구리를 움켜쥐고 홀로 119 부르러던 찰나 귀가한 아들 운전해 경찰병원 읍급실에서 온갖 검사에 4미리짜리 돌, 새벽 2시 일단 귀가, 아침 래원 어젯밤 4미리짜리는 레지던트가 잘못본거다, 2미리짜리 요로결석 그냥 나가는 수도 있으니 진통제 먹으며 주말지내봐라,가 결론입니다. 오늘 귀가한 전 약올리며 맥주 마시면 쑥 빠진다고 유혹해봤지만, 진통제 먹고 맥주 마시면 안된다고 안 넘어오던걸요. 괜찮으시지요?
  • 내일

    2016-04-29 05:37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전장을 누빈 동지애를 가지고 남편님께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 참고삼아 병원에서 전해준 주의사항에 따르면, 맥주는 결국 탈수가 되기 때문에 피하고 보리차나 생수를 하루 2리터 이상 마시는 게 좋다는군요.
  • 양수리

    2016-04-29 08:49
    살아나서 다행입니다. 둘다
  • 내일

    2016-04-30 08:16
    넵! ㅎ
  • 고니

    2016-04-30 02:30
    아버지께서 정말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을 처음 본것은 바로 그 작디 작은 '돌'들 때문이었었던 기억이 나네. 조심하셩...건강챙기시고...
  • 내일

    2016-04-30 08:17
    이젠 너도 조심할 나이다. ㅎ
  • 브라더

    2016-05-01 20:01
    안약을 넣거나 시럽을 마시는 경우 외에는 살면서 mm 단위에 신경쓸 일은 없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요로 직경을 기준으로, 4.5mm는 어느 정도일까? 아주 작다는 건 상대적인 거라, 작은 말,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는 크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네. 아무쪼록 빨리 회복되길 바라며...
  • 내일

    2016-05-01 21:50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은 정확히 말하자면 '요관'이야. 콩팥에서 걸러낸 소변을 방광으로 보내는 가늘고 긴 관이라더군.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댓글 보고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직경이 3~4mm 정도라고 나와 있네. 4mm 관을 4.5mm 돌이 막고 있으니 물이 내려가질 않았을 테고 결국 저장용량 이상으로 물이 찬 콩팥이 부풀면서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한 게 아닌가 싶어.
  • 누이

    2016-05-07 01:13
    재발확률 칠십프로에 들지않길 바라마지않는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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