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빙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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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역대급 눈이 내렸다. 밤에 눈보라 치는 걸 보고 잠든 터라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넉가래로 밀기도 힘들 정도였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고 집배원도 택배도 없었다. 원래 조용하던 마을이 더욱 고요해졌다. 아내나 나나 딱히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자발적 고립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틀 후에 문제가 생겼다. 시간차 공격이다.


금요일 새벽에 눈을 떴는데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화목 난로 덕에 겨울에도 집안에서는 늘 반소매를 입고 지내는데 그날따라 유독 서늘했다. 아이팟을 켜서 날씨를 보니 바깥 기온이 영하 22도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보니 나오지 않는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부엌에서 물을 받아오면 급한 일은 처리하겠지 싶었으나 부엌 수전도 요지부동, 설상가상이다. 욕실과 부엌이 모두 얼어 물이 안 나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멘붕이다.


한겨울에 며칠씩 집을 비운 경우 욕실 수도가 얼어 물이 안 나온 적은 간혹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집에 있는데 그런 적은 없었고 더구나 집을 비워도 부엌이 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활골 생활 8년차에 접어들면서 맞이한 초유의 사태다. 간밤에 아내 휴대전화로 왔던 동파 경고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부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지난 일을 뒤돌아보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일은 벌어졌고 문제는 풀어야 한다. 아내와 함께 긴급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우선 마당에 있는 지하수 관정 덮개를 열고 모터 펌프를 살폈다. 혹시 몰라 작은 마개를 열어보니 다행히 펌프 속 물은 얼지 않았다. 일단 마개를 다시 닫고 모터 양옆의 파이프를 통째로 녹이기로 했다. 급하게 작은 전기난로를 찾았는데 미국에서 가져온 거라 110v다. 에라 모르겠다. 다운 트랜스와 난로를 모두 펌프 옆에 두고 가동을 시작한 후 스티로폼으로 다 덮었다. 영하 9.8도로 기온이 한 자릿수를 찾은 11시 무렵 시작해 점심이 지나서야 부엌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절반의 성공. 다시 자신감이 생긴다. 그까이꺼 뭐 대충 따뜻하게 해 주면 되지. 모터 펌프와 관정을 잘 덮고 욕실 뒤로 작전 지역을 옮겼다. 연례행사처럼 이젠 능숙해졌다. 욕실 배관 덮개를 열고 녹이는데 한 번씩 꺼지는 전기난로가 못마땅해 헤어드라이어로 장비까지 교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은 커진다. 대체 어디까지 얼었는지 파이프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막막하다. 그 조급함이 압박한 탓일까. 퍽 소리와 함께 탄내가 나면서 드라이어가 장렬히 전사했다. 멘붕X멘붕이다.


슬슬 어둠이 찾아오자 마지막 베팅을 하기로 했다. 마을 어르신께 헤어드라이어를 빌려왔다. 이건 일종의 '빚투'라 절대 망가뜨리면 안 된다. 나는 <은행나무 침대> 황 장군이 되어 밖에서 하염없이 파이프를 녹이고 아내는 미단 공주가 되어 욕실에 물이 나오는지 말없이 지켜본다. 전문가를 불러야 하나 하는 의심이 자리 잡으려 할 때 아내가 외친다. 물 나온다! 순식간에 장비를 철수하고 실내로 금의환향해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어? 왜 하수구로 물이 안 내려가지? 하수도도 언다고?


하루에 세 곳이 어는 것은 반칙이다. 5초 정도 상황 파악을 하는데 몸은 이미 밖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다시 욕실 배관 덮개를 열고 이번엔 하수 파이프를 찾아 녹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집주인 선배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니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한다. 혹시 하수 배관에 이물질이 끼어 조금씩 막히다가 그 주변이 언 게 아니냐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아! 그렇다면 이번엔 실내다. 다시 동네 어르신께 가늘고 딱딱한 호스를 빌려 안에서 뚫기 시작했더니 예상외로 금세 뚫렸다.


작전 종료는 7시 무렵이었던 듯하다. 빌린 물건 반납하고 각종 도구를 제자리에 놓은 후 온수에 샤워하고 나니 살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는 불편했고 고생했으며 난감한 순간도 있었으나 문제는 해결됐고 지난 일은 추억이 되었다. 좋든 싫든 우리가 선택한 길이고 이것도 시골 생활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아놀드 토인비 선생님 말씀처럼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임을 4D로 체험했다. 이게 뭐라고 쓸데없이 비장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 강동

    2021-01-11 17:40
    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자..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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