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1996년의 일이다. 두어 달 정도를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기차를 타고 사흘 정도 더 들어간 신양가라는 곳이었다. 홀로 봉사 활동차 갔던 터라 한 미국인 선교사 게스트룸에 머물며 현지 청년들이 가구 만드는 일을 도왔다. 목공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때라 문명화된 가구를 먼저 이용해 본 사람으로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손을 보태는 수준이었다. 학교와 병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밤이면 고역이었다. 태양의 고마움을 그때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적도 없는 듯하다.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뜨기까지 숙소에서 홀로 기나긴 밤과 싸워야 했지만 낮에는 또래 청년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냈다. 언어의 차이도 그리 큰 장벽이 되지는 못했다. 동아프리카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는 스와힐리어와 부족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는 엘리샤 덕이었다. 영어를 독학으로 배웠다는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거의 온종일 붙어 지내면서 친구가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물론 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던 그렉 캠벨의 책도 세상에 알려지기 한참 전이어서 다이아몬드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엘리샤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외국인들이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좋아하던데 너는 관심 없냐고, 원한다면 자전거 한 대와 바꿀 수 있다고. 광산의 특성상 마을 주민들이 많이 일하는데 간혹 다이아몬드를 빼내 개인적으로 팔기도 한다는 거였다. 차가 거의 없는 곳이라 자전거가 우리의 승용차와 비슷한 지위였다. 비록 중국산 자전거였지만 현지인들에겐 재산목록 1호에 속하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 나이대의 남자라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보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의 말에 혹했다. 불효자의 어설픈 효심 같은 것이었을까? 노상 부모님 말씀 안 듣고 제멋대로인 나였으나 어머니께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선 딱히 돈을 쓸 곳도 쓸 일도 없었으니 수중에 있는 걸 모으면 자전거 한 대 정도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그 제안을 거절했다. 실물을 본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어둠의 경로라 떳떳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현지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옥수수 가루에 물을 타 마시는 상황인데 먹을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 따위와 그런 거래를 한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어머니께 보석을 사드릴 전대미문의 기회가 그렇게 날아갔다. 대신 약간의 미안함을 감춘 채 흙으로 빚은 아프리카인 부부상을 선물로 가져왔다. 살다 보면 결과와 과정 가운데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어떤 게 이익이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쉬운 시대라 간혹 그 일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어떤 선물을 원하셨을까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여쭤본 적이 없으니 대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키우셨으니 그게 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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