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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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골로 이사오면서 농반진반처럼 했던 '자본주의 급행열차에서 내렸다'는 말을 거둬들인다. 다시 올라탔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내리고 싶다'란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아파트 전세금을 처음 대출받던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1층에 있던 우리은행 상암DMC금융센터 대출 창구 두 번째 의자,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고통스럽거나 힘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치솟는 집값에 못 미치는 현실이 공허했다. 몸이 기계에 끼여도 톱니바퀴를 돌리기 위해 스패너를 놓지 않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코믹하게 느껴졌다. 자본의 이윤 극대화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양하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월급 받아 생활하기 나쁘진 않았으나, 나쁠 게 없으니 쳇바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눈 딱 감고 내렸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며칠 전 읍내 아파트를 샀다. 다시 대출도 받았다. 지금 당장 이사하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더 들면 들어가 살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되어 해마다 3톤의 화목을 자르고 쪼개는 것은 무리일 듯도 하고, 우리 노후를 염려하는 부모님들을 안심시켜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연초에 뜻하지 않게 으로 다녀온 휴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친구들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 아무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으나, 집 한 칸 없는 우릴 향한 선의의 걱정과 구체적인 조언을 밤마다 듣고 왔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7년을 살았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7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제 활골에서 7년이 되었다. 일부러 계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과거의 생각이 굳어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했다. 여전히 노년을 보낼 희망지 1순위는 세이셸이지만 너무 먼 인도양에 있어 백업플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가까운 아파트를 택한 셈이다.


20년 된 작은 시골 아파트에 그나마 절반은 은행 것이라 자랑으로 읽힐 리는 만무하겠으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 올릴까 말까 망설였다. 5초 정도 생각하다 결국 이렇게 쓰는 이유는 약간의 의무감에서다. 법정 스님은 "그동안 풀어 논 말빚"이라며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해인 수녀는 <말을 위한 기도>에서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호기롭게 했던 말이 달라졌으니 최소한의 설명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는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자본주의라는 호수에 떠 있으려면 물밑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발질을 할 수밖에 없더라는 이야기다. 맞다. 항복이다. 그러나 집이 없었을 때도 우리는 행복했고 집이 있는 지금도 행복하다. 여전히 재밌다.


  • 제비

    2020-06-24 12:50
    간간이 활골 이야기를 나에게서 전해 듣는 남편이 읍내 아파트 구입 소식에 매우 놀라며 '아니 왜?'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ㅎㅎ 사실 저는 두 분이 활골에서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느낌적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그냥..(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읍내에 집을 샀다는 말에 저는 더 놀랐습니다.^^ 자본주의 급행열차에서 내린 동지로서 공감합니다. 저희는 더 나이가 들면, 혹은 둘 중 혼자만 남게 되면 시설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돈이 필요하겠지만 아주 가까운 시일에 닥치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복지정책도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어 필요한 액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 아래서 말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자면 끝도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행복하고 재밌다는 말에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웃음과 행복은 아끼고 미룬다고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다 없어져 버린다는 것......잘 하셨어요!!!
  • 내일

    2020-06-24 23:46
    사실 '오래'라는 시간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이 집을 저희에게 빌려준 선배는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하니 7년 차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꽤 오래 살고 있는 셈이기는 합니다.ㅎ 일전에 마을 할머니들과 산책하는데 갑자기 저희더러 "우리 없어도 여기서 오래 살아"라고 하시더군요. 내색하진 않았지만 잠시 먹먹했습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집이고 자리 잡은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장소에 매이진 않습니다만, 할머니들께 먼저 인사드리긴 어려울 듯합니다. 언젠가는 떠날 수 있겠으나 이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기까지는 살지 않을까 싶네요. 응원과 지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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