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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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당에 첫 길냥이가 들어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이후 몇 마리가 다녀갔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시처럼 어쩌면 고양이들도 외로웠던 것인지 모르겠다. 우린 그저 오는 냥이 막지 않고 가는 냥이 잡지 않았을 뿐이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에 거두진 못했으나 밥 달라고 떼쓰는 녀석들을 위해 사료를 놓았고 물확에 깨끗한 물을 받아둔 게 전부다. 문만 열어도 소스라치게 놀라 뒤도 안 보고 도망치는 부류도 있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전자는 한두 번 오더라도 결국엔 발길을 끊었고 후자는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양 우리 데크에서 사료를 먹고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람의 성품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고양이도 그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외가 생겼다.


얼마 전부터 간혹 보이던 황토색 얼룩무늬 냥이가 그랬다. 처음엔 눈이라도 마주치면 잔뜩 겁을 먹고 달아나기 일쑤인 소심한 녀석이었다. 수컷 냥이 '호기심'과는 아는 듯해 우리끼리는 '호기심 여친'이라 불렀다. 체구는 훨씬 작은 새끼 냥이인데 분명 암컷 같았기 때문이다. 도무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아 마음을 비웠는데 며칠 전 아침 데크 위로 순순히 다가와 손길을 받아주었다. 사료를 줘도 먹지 않아 어디가 아픈 줄로만 알았다. 머리 위쪽으로 진드기가 잔뜩 있어 급한대로 핀셋을 가져다 진드기부터 떼냈다. 놀라운 일은 다음 날 아침 벌어졌다. 데크 위 그 녀석 옆에서 움직이지 않는 새끼 두 마리를 발견했다. 다 자라지 못하고 죽은 새끼를 낳은 듯했다. 무슨 일인지 물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데크 위를 정리하고 마른 사료 대신 참치 캔을 땄다. 피골이 상접해 겨우 입만 대더니 쓰러져 잠만 잤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픔까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양이 눈 아래로 눈물이 길을 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떤 생명에게나 자신만의 삶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그저 무심히 눈물을 닦아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름이. 공대 아름이처럼 아름답고 늠름하게 활골을 휘젓고 다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났다. 이제는 눈을 마주쳐도 겁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가면 다가와 스스럼없이 대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데크 위에 널브러져 있고 쓰다듬어줘야 사료를 먹는 이상한 버릇마저 생겼다. 아직도 간혹 진드기가 한 마리씩 보이지만 머리 위 상처는 많이 사라졌다.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있다. 이제 그만 다들 제 갈 길 갔으면 좋겠는데 이른 아침이면 문 앞에서 밥 달라고 합창하는 녀석이 한 마리 늘었다. 다음엔 좀 더 맛있는 사료를 사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k

    2020-06-15 10:55
    행복한 고민... 세상에 이런 고민이 많아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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