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티셔츠

T.jpg


활골에 내려와 제일 많이 입는 옷은 티셔츠다. 깃도 단추도 없는 소위 '반팔 라운드티' - 정확한 영어 표현은 크루넥 티셔츠 - 다. 외출용으로는 약간의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프린트가 있는 회색 계열을 선호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아무 티나 입는다. 해져도 괜찮고 얼룩이 있어도 상관없다. 사실, 밖에 나갈 때도 개의치 않지만 함께 가는 아내를 배려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그러다 보니 색상만 다를 뿐 일년 삼백육십오일 그 옷이 그 옷이다. 더울 땐 티셔츠만 입고 추울 땐 그 위에 하나를 더 걸치는 정도다. 대략 예닐곱 벌의 티셔츠를 매일 하나씩 돌려가며 입는 듯하다. 어느 정도 입다 보면 낡고 닳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나 오래 입을수록 정들고 익숙해져 버리기 아쉽다. 그래도 아내가 '인제 그만'을 선언하면 따라야 한다. 대개는 잘려져 목공소 스테인용 천으로 생을 마감한다.


간혹 대전에 나갔다 유니클로 매장을 지나칠 때면 클리어런스 매대에 있는 티셔츠를 사곤 했다. 재질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큰 할인폭 덕에 꽤 저렴해서다. 참기 힘든 프린트만 아니라면 디자인은 상관없고 크기만 맞으면 된다. 며칠 전 대전 갈 일이 있어 티셔츠를 살까 했는데 그냥 돌아섰다. 유치찬란한 디자인은 참아도 일본의 유치찬란한 보복 조치라는 걸 모른척하긴 어려워서다. 그래 봐야 몇 장의 티셔츠지만 아베 신조씨가 정신 차릴 때까진 뭐라도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밤 인터넷에서 우연히 지오다노 세일을 보고 티셔츠를 주문했는데 유니클로보다 더 싸다. 석 장에 1만3200원, 게다가 무료배송이다. 뭐가 남는 게 있을까 싶은데 빠르기까지 하다. 하루 만에 도착한 택배에 '레몬'색이라는 게 들어있다. 아니, 내가 뭔 정신으로 저 색을 골랐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