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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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런던 가기 전에 하나은행에서 환전했다. 농협을 제외하고는 금산 유일의 은행이다. 6주간의 체재비 전액을 영국 파운드화로 바꾸니 액수가 꽤 컸다. 창구 직원이 가장 고액권인 50파운드(약 7만4000원)권을 권해 그렇게 했다. 문제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오이스터라는 교통카드를 구입할 때 생겼다. 입국장에는 대면 창구가 전혀 없고 자동판매기만 여러 대다. 소위 효율화를 내세워 사람을 없애는 것은 전 세계 자본주의의 공통점인 듯했다. 교통카드 자판기에 5~20파운드 지폐는 사용할 수 있으나 50파운드는 받지 않았다. 최신 화폐도 아니고 1725년부터 발행했다는 50파운드를 사용할 수 없다니 당황스러웠다. 런던 내 1~2존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통카드 한달권은 보증금 포함 139.80파운드(약 21만 원). 결국 50파운드 지폐 3장을 소액권으로 바꾸기 위해 입국장 내 커피숍 여러 곳을 돌며 사정해야 했다. 이후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쉐이크쉑에서도 회사 방침상 50파운드는 받지 않는다고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영국 방문 계획이 있다면 50파운드 환전은 피하길 권한다.


#2
이번에도 교통카드다. 어렵사리 바꾼 10~20파운드 지폐를 들고 자판기 앞에 섰다. 한달권을 선택하고 지폐를 넣기 시작했다. 130파운드까지 넣고 그다음 10파운드를 넣는 순간 화면에 오류가 떴다. 커피숍에서 바꿔온 구겨진 지폐 한 장이 걸린 듯했다. 잠시 에러 메시지를 띄우더니 첫 화면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 아닌가. 내 돈 140파운드를 꿀꺽한 채. 이번엔 당황을 넘어 황당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20만 원 넘는 돈을 강도당한 것이다. 그것도 기계에게. 어렵사리 공항 직원을 찾아 담당자를 불러 달라고 했다. 한참 만에 나타난 직원은 자판기를 열더니 끼어있던 10파운드를 꺼내주면서 더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돈통은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 열 수 없으니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가서 히드로 익스프레스에 문의하란다. 결국 이메일 두 번과 한 차례 통화를 거쳐 어렵사리 돌려받긴 했다. 그것도 3주 만에, 현금이 아닌 카드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내가 머물던 아파트 옆방 런더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드문 일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대체 영국은 어떤 나라인 것인가.


#3
런던과 파리 그리고 옥스퍼드를 오가는 한 달 반 동안 한식을 먹은 적이 없다. 연수기관이 영국 재단이라 만찬 등을 영국 식당에서 했기 때문에 한식당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굳이 찾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가 여행가방에 넣어준 볶음고추장 튜브도 그대로 다시 가져왔다. 영국 대표 음식으로 손꼽히는 피쉬앤칩스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건너뛰었으나 햄버거나 샌드위치, 파스타와 라자냐 등 만족스러운 메뉴가 많았던 탓이다. 여러 식당을 다니며 가장 눈에 띈 것은 채식의 보편화였다. 어딜 가도 채식(비건) 메뉴가 있었고 주말 마켓에 등장하는 길거리 부스도 마찬가지였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해산물로 유명한 스페인 요리 파에야에도 비건 메뉴가 있어 놀라웠다. 서브웨이 샌드위치 경우에도 한국처럼 단순히 야채만 넣은 베지 샌드위치가 아니라 야채로 만든 두툼한 패티를 넣은 비건 샌드위치가 있었다. 확실히 비건이 핫한 트렌드였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걸 볼 때마다 조만간 한국에 상륙하겠구나 했는데 비건 메뉴가 한국에서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4
쉐이크쉑, 어니스트, 파이브가이즈, 패티앤번, 바이런. 런던에서 유명한 햄버거 가게들이다. 다들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번화한 곳이면 어렵지 않게 한두 곳은 볼 수 있다. 맛은 훌륭한데 이름값만큼이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세트 메뉴가 없는 곳도 많아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를 각각 시키면 2만 원은 훌쩍 넘었다. 좀 더 저렴하고 가볍게 먹고 싶을 땐 맥도날드나 버거킹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메뉴판 가격과 주문 시 가격이 약간 달랐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물어보니 설탕세(Sugar tax)란다. 코카콜라의 경우 다이어트 콜라나 제로 콜라처럼 설탕이 안 들어간 음료를 기준으로 밀(세트) 가격을 책정하고 설탕이 들어간 클래식 콜라를 주문하면 금액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크기인 레귤러 제품의 경우 13펜스(약 200원)가 더 붙었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도입한 설탕세 여파로 설탕이 들어간 양에 따라 가격이 다르단다. 나부터도 일반 콜라 대신 제로 콜라를 마셨으니 효과는 있는 듯했다. 그만큼 영국 사회가 비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건데 이런 건 한국에도 들여오면 좋지 않을까 싶다.


  • 누이

    2019-07-08 01:42
    부지런함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구만~ 재밌고 반갑네... 알쓸신잡버젼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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