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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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스에게 발뒤꿈치가 약점이었다면 나에겐 기관지가 그런 듯하다(그렇다고 내가 아킬레스처럼 다른 부분이 다 강하단 뜻은 아니다).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면 목부터 붓고 감기나 몸살이 와도 목에서 신호가 온다. 따라서 내게 기관지는 공기가 왔다 갔다 하는 통로 이상의 의미다. 언젠가 건강검진에서 내 기관지가 원래 그렇게 생겨서 어쩔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난 후부터는 그러려니 하고 산다. 다만, 평소 병원에 잘 안 가고 약도 잘 안 먹지만 기관지 쪽은 좀 예외다. 일단 목에 이상 신호가 뜨면 어떤 형태로든 선제적 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잔기침이다. 주로 기상 후 아침과 취침 전 저녁에만 불시에 나타나 귀찮게 한 지 좀 됐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차를 끓여주어 그걸로 슬슬 달래곤 했다.


목이 아픈 것도 아니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점령하고 사라질 줄을 모른다. 요 며칠 좀 피곤한 일이 있었더니 잔기침이 더 심해졌다. 혼자 있을 땐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땐 영 난감하다. 그럴 때 꺼내 드는 것이 사탕, 그것도 '리꼴라'라는 스위스제 캔디였다. 외국에 있을 때부터 먹었는데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흔하게 파는 것이라 뭐 딱히 고급 캔디라고 하긴 어렵고 단지 허브로 만들어 덜 자극적인 듯하다. 사탕이 다 떨어져서 다시 살까 했는데 아내가 그러지 말고 차라리 스트렙실을 사란다. 약효가 있는 사탕이니 더 효과적일 거라는 말에 끌려 결국 사 왔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땐 그게 뭐였더라 싶었는데 한 개를 입에 넣어보니 느낌이 딱 왔다. 아, 이거였구나. 특유의 멀미약 같은 맛을 싫어했던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리꼴라와 스트렙실을 오가는 사이 형과 통화할 일이 생겼다. 지나가는 말로 목 상태를 얘기했더니 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 그거 노화의 과정이야." 본인도 종종 그럴 때가 있고 나이 드신 분들이 사탕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도 그거라고. 심할 때는 용각산이 잘 듣더라는 생생한 체험담까지 들려주었다. 뭔가 같은 길을 먼저 지나간 선배의 말이라 그런지 이해도 되고 안심이 됐다. 다만, 용각산이란 단어에 미간이 찌푸려질 무렵, 요즘엔 복숭아향이 첨가된 낱개 포장도 있어 먹기 어렵지 않다는 흡사 광고 멘트 같은 섬세한 조언이 뒤따랐다. 처음 '노화의 과정'이란 말을 들었을 땐 웃기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매우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오래 썼으니 여기저기 슬슬 삐걱댈 때도 됐구나 싶다. 선배들 조언 잘 들어가면서 용각산 가루도 뿌리고 기름칠도 하고 잘 달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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