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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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골은 외길이다. 들어간 길로 나와야 한다. 마을에서 도로가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조용하다. 몇 가구 되지도 않고 차도 몇 대 없다. 더는 길이 이어지지 않으니 지나가는 차가 있을 수 없다. 내비게이션이 발달한 시대라 길을 잘못 드는 차도 만나기 어렵다. 하루 세 번 들어오는 버스, 간혹 방문하는 고물상이나 잡화상 트럭이 외부 차량의 전부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상황을 좀 아쉽게 느끼시는 듯하다. 우리 마을도 다른 곳처럼 길이 뚫리고 개발도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슬쩍 다른 마을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금산 나들목(IC) 가까운 마을은 넓은 도로가 있어 다니기는 편하지만 공장이 늘어나면서 불산도 누출되고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다 좋을 순 없으니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을 텐데 조용하고 공기 좋은 우리 마을이 좋지 않으시냐고. 그러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런 마을이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평소 보기 힘든 중장비가 즐비하고 사람들 소리에 시끌벅적했다. 마을 도로를 포장하는 작업자들이다. 시멘트 깔린 길이었으나 깨진 곳도 많아 아스팔트를 덮어씌우게 된 것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에서 우리 집 앞까지 1.2km 구간이다. 일종의 마을 숙원사업으로 지난해 이장님이 예산 편성되었다며 내년엔 포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아침 7시 조금 지난 시간에 시작해 저녁 7시까지 꼬박 12시간쯤 걸린 듯하다. 울퉁불퉁하던 길에 검은 비단을 깔아놓은 듯 한결 깔끔해졌다. 며칠 전 집주인 선배와 통화하다 도로포장 소식을 전하니 뭐 이런 산골까지 아스팔트를 까느냐며 웃는다. 올해 국가 예산이 470조 원이나 되는데 비록 산골이라도 이 정도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은 과하지 않아 보인다. 여기도 세금 내는 시민들이 살고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는 게 맞으니까.


하루 전날 작업자들이 다니면서 준비를 했다. 도로 옆으로 쌓인 흙이나 돌 따위를 치우고 풀을 뽑았다. 우리 집 앞에는 은색 락카로 시작점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그려놓더니 길옆에 심어놓은 꽃잔디까지 절반 이상 밀어버렸다. 그게 미안했던지 집으로 올라오는 야트막한 경사도 포장해주겠노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한번 깔면 걷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두꺼운 아스팔트를 집으로 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도로포장이 싫은 건 아니다. 비라도 내리면 길에 고인 물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아도 되고 겨울이면 눈이 녹지 않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테니 좋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이다. 더는 안 했으면, 굳이 길을 뚫거나 통과하는 도로를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방팔방 뚫린 곳은 어디에나 있으니 외길로 끝나는 마을도 하나쯤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활골을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개발 가능성 제로였다는 것도 있고.


  • jebi

    2019-04-02 10:41
    '딱 거기까지만'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과 생각도 다르고...
  • 내일

    2019-04-03 05:43
    맞습니다. 현재로선 '딱 거기까지만' 지켜질 가능성이 높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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