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홍콩

지난주 홍콩에서 있었던 일이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으니 '봤다'는 게 좀 더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말없이 식사하던 한국분 -으로 추정되는 어르신 - 이었다.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닌 그 넓은 식당에서 이틀이나 서로 같은 자리에 앉았으니 쉽지 않은 우연이다. 내가 그분을 기억하는 이유는 자리에 놓인 식사 때문이다. 도자기 재질의 큰 접시에는 흰 쌀밥과 김치 몇 조각이 전부였다. 긴 포크를 들고 불편하게 드시는 모습이 내 시선을 끌었다. 심술 궂은 여우가 납작한 접시에 내놓은 수프를 긴 부리 탓에 먹을 수 없었던 이솝 우화 속 두루미가 떠오를 정도였다.


조식 뷔페라 산해진미까지는 아니더라도 5성급 호텔답게 잘 차려진 메뉴였으나 입에 맞는 음식이 없으신 듯했다. 하루걸러 한 번 더 뵀을 때도 흰밥 한 덩이와 김치 몇 조각을 담아 불편하게 드시는 모습은 여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자세였다. 옆으로 몸을 튼 채 한 손에는 휴지를 들고 간혹 눈물을 닦고 계셨다. 맞은편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옆자리에는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 묵묵히 식사하고 있었다. 애써 서로를 외면하듯 오로지 자신의 접시만 응시하는 침묵의 식사였다. 내밀한 가정사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먼 나라까지 여행 와서 뭔가 '트러블'이 생겼다는 정도는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저 할머니가 안쓰러웠고 그 가족이 살짝 야속했다. 호텔 뷔페에서 눈물 젖은 식사라니, 그것도 왕후의 밥과 걸인의 찬으로. 맛있는 식사일 리 만무했고 즐거운 시간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든 신경을 다 거두지는 못했다. 외국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거라면, 스시롤 주변에 된장국과 유사한 미소시루가 있고, 오믈렛 만드는 요리사에게 부탁하면 계란 후라이 정도는 금방 해주며, 불편한 포크 대신 젓가락을 가져다 쓰시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연세 많은 분이라 모르실 수도 있어 알려드리고 싶었으나, 가족이 있는데도 그러는 것은 오지랖이 넓은 듯해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이라 남 일 같지 않았다. 남의 자식 뭐라 하기 전에 나나 잘하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좀 더 편한 여행을 위해 일정을 직접 짰는데도 부모님 체력을 간과해 힘들어하기도 하셨다.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형과 누나네 가족까지 열한 명이나 되다보니 신경 쓰이는 게 적지 않았다. 함께 다니며 조카들이 어느새 훌쩍 자란 걸 발견하고는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장점도 보고 단점도 보이고 그런 게 가족일 거라 생각했다. 간혹 만나 좋은 말만 하던 것과 달리 이런저런 잔소리도 했으니, 아이들도 나에 대해 달리 느꼈을 듯하다. 배려는 주관적인 것이고 판단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니. 설날의 추억이 그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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