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스키너(Patrick Skinner), 47세.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시 경찰관으로 순찰이 주 임무다. 머리숱이 적고 수염을 짧게 길러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인처럼 생겼다. 그는 한때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는 CIA 요원이 무소불위의 존재로 그려진다. 국경을 넘나들고 사람을 납치하며 때론 가차 없이 죽이기까지 한다. '랭글리'(CIA 본부)의 명령을 받아 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스마트한 007이었다면 이젠 살인청부업자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낭만도 없고 웃음기도 사라졌다. 911 테러 이후 변한 모습이다. 실제 CIA 요원도 그럴까?


스키너는 911 테러 직후 CIA에 지원해 현장 요원이 되었고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을 경험하며 회의를 느껴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동네 순경이 되었다. CIA 퇴직 직후 민간 정보분석기업인 수판 그룹에 몸담기도 했으나 CIA 동료가 IS에 의해 살해당하자 그 일마저 관두고 경찰을 선택했다. 1년에 10만 달러(1억1400만 원) 이상 연봉을 손해 보면서도 순찰차를 몰고 있다. 자신이 받은 훈련과 전문 지식을 가장 의미 있게 활용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경찰이 동네에 있다면 무척 든든할 것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다.


패트릭 스키너의 이야기를 '미국 지성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잡지'라는 <뉴요커>에서 읽었다. 벤 타웁 기자가 쓴 심층취재기로 스키너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묘사하고 있다. 공들여 쓴 좋은 기사라 공유하고 싶어 번역해봤다. 하다 보니 꽤 긴 분량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절반쯤에서 멈췄다. 매우 흥미롭지만 이렇게 긴 글을 누가 읽을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영어가 편한 분은 원문(링크는 맨 아래)을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혹시라도 요청이 있다면 나머지 번역도 고려해보겠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렸다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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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온 스파이
- 대테러 전문가는 왜 순경이 되었나

글_벤 타웁


짧은 저녁잠 후, 패트릭 스키너는 안 맞는 방탄복을 입은 채 조지아주 서배너 3구역에 있는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때는 12월 말이었고 매섭게 추웠다. 추운 날씨 탓에 총격 사건은 평소보다 줄 테지만 가정폭력은 증가할 것이다. 그는 "여름철은 살인철"이라고 했다. 거는 고리가 부러진 바디캠에 테이프를 붙이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길이었다.


교대 근무 책임자인, 배가 좀 나오고 키가 큰 경장이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좋은 아침!" 밤 10시 31분에 그가 말했다. 담배에 찌든 마이크를 들고 아침부터 있었던 범죄 사건을 브리핑했다. 그리고 나서는 도난 신고된 차량 목록을 늘어놓았다. "거북이 색깔 트럭 잘 찾아봐."


브리핑룸 벽은 드문드문 장식이 벗겨져 있었다. 서배너 최대 우범지역을 끼고 맨해튼 절반보다 큰 3구역 내 순찰지역 지도가 걸려있었다. 옆에는 다양한 마약 샘플을 전시해놓은 상자와 고장 난 순찰차 명단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놓였다. 한 대는 엔진 과열이고 두 대는 사고로 부서졌으며 또 다른 두 대는 전조등 고장이었다. 여섯 번째 차는 "도로주행 부적합"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도로주행 부적합'이 뭔 말이야?" 한 경찰이 물었다.

"우리 차가 다 그렇지." 다른 이가 대답했다.


순찰 경관들은 대부분 구형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를 몬다. 그중 몇 대는 주행기록계가 20만 마일에 육박했다. "근데 그게 최소한 한 시간에 두 번은 미친 듯이 밟아대는 경찰 마일이지." 스키너가 내게 말했다. 경찰관들은 다 닮은 타이어와 위태위태한 브레이크, 총과 경찰봉에 쓸려 구멍 난 시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순찰차는 대부분 24시간 돌아다닌다.


마흔일곱 살의 스키너는 키가 작고 대머리에 말쑥하게 다듬은 턱수염과 푸른 눈을 하고 있어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는 자석 같은 힘을 지녔다. 유머러스하고 외향적인 태도 탓인지 대부분의 동료는 그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했다.


새벽 3시경,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상한 차' 한 대가 서머사이드에 있는 누군가의 집 진입로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신고다. 전화 건 사람은 주소나 차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스키너는 겨우 두 달 전에 훈련을 마쳤지만, 3구역 내 모든 도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한가한 밤이면 서배너 신호등과 일단정지 위치를 외우곤 했다. 그렇게 하면 어디서 신고가 들어와도 최단 거리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스키너와 함께 훈련받은 대런 브래들리의 말이다. "경찰 신호와 코드를 적은 종이 - 200개에 달하는 라디오 콜 사인 목록 - 를 받았을 때, 그가 대충 훑어보더니 다 외웠더라구요."


스키너가 서머사이드에 가까워질 무렵, 검게 선팅한 흰색 카마로 한 대가 다가왔다. 조지아주 등록 차량들은 앞번호판을 달지 않는다. 카마로가 쌩하고 지나가자 스키너는 백미러를 통해 힐끗 보더니 거꾸로 보이는 뒷번호판 숫자를 외웠다.


스키너는 카마로의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북쪽으로 속도를 높였고 어떻게 따라잡을지 골몰했다. "그 녀석이 바보라면 52번가에서 우회전해서 다음 신호등에서 내 뒤로 올 겁니다." 스키너가 말했다. 2분 후 그 카마로는 곡선을 그리더니 스키너 뒤에 멈춰 섰다. 그가 웃었다.


서배너에서는 매일 몇 대의 차량이 도난당하고 범죄에도 종종 이용된다. 카마로 운전자가 살짝 피하려는 듯했으나, 스키너는 이런 행동을 이유로 차량 검문을 하지는 않았다. 상황실에서 자동차 번호를 확인했고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스키너는 순찰을 이어갔다.


조지아주 경찰 훈련 프로그램에는 거울에 거꾸로 보이는 번호판 암기 같은 건 없다. 스키너의 능력 대부분은 중앙정보국(CIA)에서 연마된 것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가운데 하나였던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 CIA에 들어갔다. 거의 10여 년을 아프가니스탄, 요르단, 이라크에서 보냈다. 의원들이나 CIA 국장들, 요르단 국왕과 카타르 국왕, 싱가포르 수상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그리고 미국 대통령과도 악수를 했다. "나는 대테러 작전과 법 집행계의 포레스트 검프였어요." 역사의 가장자리 안팎에서 그들을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동안 대테러 작전은 해결한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고 믿었다. 반자유주의와 히스테리를 부추기고, 해외에서 공동체를 파괴하며, 관심과 자원을 미국의 진짜 문제들이 아닌 다른 데로 돌렸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경찰은 군대화된 전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키너가 해외에서 봤던, 내란을 일으키게 만들던 것들이었다. "우리가 마치 이라크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 방식은 효과가 없어요. 팔루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구요." 결국 그는 자신이 받은 훈련과 전문 지식을 가장 의미 있게 활용하는 길은, 그가 자란 서배나에서 동네 경찰관이 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국의 안보에 대한 그의 신념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역 수니파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자'고 하면서 전략 백서를 씁니다." 스키너가 말했다. "좋아요. 그런데 만약 내가 '38번가와 불로크가 사이에 사는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자'고 한다면 당신은 그게 가능하겠냐고 생각할 겁니다. 겨우 도시의 한 구역인데도 말이죠. 그런 발상을 여기 적용하면 매우 멍청한 말로 들릴 겁니다. 라이브 오크 지역의 백인 커뮤니티 지도자가 누굴까요? 혹은 빈곤층 커뮤니티 지도자는요?" 스키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라크 커뮤니티 리더'? 대체 무슨 엿 같은 말이냐구요."


어떤 군대도 테러리즘을 끝장내진 못한다. 마치 소방관이 불을 없애지 못하거나 경찰이 범죄를 없애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방법은 있다. "정부가 계약을 맺고 '6개월 안에 이런 성과를 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스키너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여기 산다. 이게 영원한 내 일이다'여야 하죠." 그는 자신의 상황을 볼테르의 캉디드에 비유했다. 광신주의와 무능으로 괴로운 사회에서 황당한 공포를 견딘 후,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은 자신의 정원을 돌보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주인공 말이다. "내 정원은 3구역이란 것만 다르죠." 스키너가 말했다.


"나는 뭘 해도 선임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신참이었지." 1991년, 19살이었을 때 그는 해안경비대에 지원했다. 2년간 수색구조 임무를 맡았고 그 후 3년 동안 허드슨강에서 쇄빙선을 탔다.


그는 해안경비대에서 아내 테레사를 만났고, 1999년 그녀는 워싱턴에 있는 본부로 발령받았다. 대학 졸업 때까지 두 해 정도 웨이터와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했던 스키너는 국회 경찰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졸업식은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로 인해 막혔다. 그 잔해가 다 치워지기도 전에 스키너는 CIA에 지원했다. 그 몇 주 동안 CIA에는 10만여 건의 지원서가 몰려들었고 발탁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국회 경찰대는 스키너에게 잠시 상원에서 근무하는 사복 경관 임무를 주었다. 2002년 1월 29일,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연두교서에 참석하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과 동행했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부시가 불량 국가들로 이루어진 "악의 축"과 "그리고 그들의 테러리스트 동맹"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이라크 침공을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그해 말, 스키너는 국회 경찰대를 떠나 비행기 보안요원이 되었다. 하루는 발신 번호가 없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부를 위한 일에 지원하셨죠?" 전화 건 이가 물었다.


"저는 이미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데요." 스키너가 답했다.
"예. 그런데 제 말은 진짜 정부 말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CIA 요원 선발관이었다. "그는 내게 질문을 퍼부었죠. '인더스강이 카슈미르 북쪽인가 아니면 남쪽인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할이 언제였나?' '이스라엘 서안 지구의 마을 다섯 곳 이름은?' 기본적으로는 탈락시키기 위한 절차였을 겁니다." 스키너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정답을 다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지난 6개월 동안 신문이나 <이코노미스트> 읽는 것 말고는 할 게 아무것도 없는 비행기에서 지냈기 때문이죠."


2003년 여름, 스키너는 9/11 이후 세 번째 기수로 CIA에 들어갔다. 외교관 신분으로 일하는 작전 요원 역할이었다. 그는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거절했다. CIA는 훈련 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훈련 내용은 과거 요원들이 쓴 여러 회고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훈련은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에서 시작된다. 미래의 작전 요원들이 해외에서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위장 신분을 개발하는 곳이다. 몇 개월 후 그들은 '농장'으로 보내졌다. 버지니아주 남동쪽에 있는 나무가 우거진 훈련시설이다. 약 9개월 동안 교육생들은 이곳에 거주하며 갈수록 복잡해지는 역할 시나리오를 경험한다. 농장은 가상의 비우호적인 국가이고 교관들은 교사, 전술가, 정보원, 국경경비대, 적국 정보요원 등의 역할을 한다. 작전 요원들은 간혹 자국의 비밀을 빼내기도 한다. 대신 그들은 정보 제공의 대가로 믿을 수 있는 외국인을 포섭한다.


교육생들은 가짜 대사관 파티에서 포섭 기술을 연마한다. 각각의 교육생들에게 주최국의 대상이 정해진다. 그리고 나면 대상자가 관심 가질만한 것이나 취미 등으로 대화를 나누는 임무가 부여된다. 저녁이 끝날 때까지 교육생들은 대상자의 세부 연락처 등을 확보해야 한다. 이 연락처는 정교하게 오래 걸리는 포섭을 시작하는 데 활용된다. 다음 날 교육생들은 그들의 접근법에 대해 평가받는다. 맥주를 병째 마신 것 같은 사소한 지적에 점수가 깎인다. 일반적으로 외교관들은 잔을 사용한다.


교육생들은 필요한 일이 절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투 기술을 교육받는다. "충돌 후 화재"라고 알려진 운전 연습을 통해 고속에서 장애물 피하는 법이나 검문소에서의 행동 요령, 바리케이드 부수는 법 등을 배운다. 무장한 교관들에게 쫓기면서 방향 탐지법과 맨손으로 싸우는 법 그리고 진흙 속에 숨어 며칠 보내는 법을 연습한다.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리는 법을 익히고 폭발물이나 외국산 무기, 기밀 통신 장비 다루는 법도 배운다.


그들은 또한 훈련시설 밖에서 수백 시간을 보낸다.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 교외에 숨어지내며 감시 탐지 경로를 구상해 걷거나 렌터카를 이용한다. 교육생들은 대사관 파티에서 포섭한 대상을 만날 지역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90분이 소요되도록 경로를 짠다. 혼잡한 곳과 외딴 도로를 지나 일상처럼 주유소나 가게에 들르면서 감시팀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진짜 목적은 감춘다. CIA는 해마다 몇 대의 렌터카를 폐차시킨다. 교육생들은 꽤 오랜 시간 거울을 응시하느라 때론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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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친밀화에 대한 CIA의 집착은 스키너가 하고 있는 치안 유지 활동의 모태다. 그는 매번 자신의 순찰 구역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순찰 구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가끔은 일방통행에서 역방향으로 주행한다. 정형화된 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한산한 밤이면, 몇 주 전에 발생한 미해결 강도 사건 현장에 차를 세우고 강도가 도망갔을 법한 도주로를 그려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번에는 강도가 어디로 향하든 곧장 따라잡기 위함이다.


3구역에는 자정 넘어까지 문을 연 시설들이 많아 일 년이면 몇 차례씩 총을 들이대는 강도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경찰의 수고에 고마워하죠. 근데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맥도날드 종업들입니다." 스키너가 말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총으로 위협당하는 게 그들이죠." 그가 덧붙였다. "진짜로 총을 안 맞는 유일한 곳은 밤늦게 문 연 술집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죠. 만약 이 집이 문을 닫는다면 어디 가서 술 먹고 싸우겠어?"


어느 날 밤 스키너와 나는 캔들러 병원 근처에 뭔지 모를 차가 퍼져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3구역의 남쪽 끝이었다. 누군가 주차장 밖으로 나가려다 포드 토러스를 20피트 넘는 잔디 언덕에서 병원 간판을 들이박았다. 앞 좌석에 피가 낭자했으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뒷좌석에서 스키너가 기저귀와 빈 마약통, 자동차 번호판과 운전면허증을 발견했다. 부스스한 갈색 머리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른 백인이었다.


"멀리 못 갔을 것 같은데." 한 경찰이 짧게 말했다. 주차장 반대편 끝에는 응급실 출입구가 있었다.

"이미 확인해 봤습니다. 거기 없더라구요." 젊은 경찰인 브래들리 맥클러런이 답했다.


캔들러 병원은 쇼핑몰과 주택가에 둘러싸여 붐비는 고속도로 옆에 있다. 스키너는 추운 날씨와 운전자의 상처 정도를 고려해 수색 지역을 세 곳으로 좁혔다. 그는 차를 몰고 두 구역 떨어져 있는 맥도날드에 들른 후 옆에 있는 월그린에 들어가 "텁수룩한 머리털에 술 취해 피 흘리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당황해하진 않았을 겁니다. 운전 실력이 좋지 않지만요. 음주운전을 해서 도주 중이거든요." 자수하기 전 술이 깰 때까지 음주 관련 혐의를 피할 심산일 거라고 했다.


스키너가 예상한 세 번째 장소는 하버샴 거리 북쪽이었다. 도심으로 돌아가는 길로 주변 사람에게 태워달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새벽 2시 41분, 캔들러 병원 의료진이 경찰에 신고했다. 텁수룩한 사람이 술에 취한 채 피를 흘리며 하버샴 거리에 있는 주유소에서 실려 왔는데 지금은 응급실에서 욕을 하며 의료진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이 부러진 것으로 추정한 의사가 일단 붕대로 감아 입원시킨 상태였다. 피는 이미 뽑았으니 음주 운전을 증명하기 위해 혈액 샘플 확보에 필요한 영장만 있으면 됐다.


2004년 여름, 스키너는 CIA 훈련을 마치고 칸다하르에 배치되었다. 파키스탄 국경 인근의 아프가니스탄 도시로 CIA가 애꾸눈의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살던 집에서 작전 중이었다. 3년 전 카불이 함락되었으나 알카에다 지도부는 국경 인근 산악지대에 은신처를 만들었고 파키스탄 정보부가 탈레반을 조용히 도왔다. 아프가니스탄에 매인 CIA 요원들은 무법천지인 파키스탄 지하드 조직에 침투할 정보원을 포섭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접근하는 것 말고도 문제는 많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CIA는 1960년대에 제작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지형지물이나 마을 이름이 지역 사람이 부르는 것과 달랐다.


칸다하르 사람들은 종종 스키너를 찾아와선 비밀을 돈 받고 팔려고 했다. "우리는 한시적 거주 요원이었고 그들은 우리의 순환 근무 시스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에겐 정보가 있었죠. 파키스탄 국경 넘어 퀘타에서 빈 라덴, 자와히리 같은 우두머리들을 어떻게 봤는지 같은. 만약 거기 처음 간 신참이라면 '맙소사, 내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현장 요원이 되겠구나' 같은 생각이 들 겁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500달러 주면서 본부에 보고하겠죠." 순환 근무가 끝날 때까지 스키너는 이런 신빙성 없는 이야기들을 꽤 많이 들었다.


인디아나 출신의 현장 요원 더글라스 록스는 2010년 칸다하르로 배치되기 전, 남아프간에서 사용되는 파슈토어를 배웠다. 갑자기 찾아온 이들이 예의 그 탈레반 전사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그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물었다. "그가 내게 알려준 바에 따르면, 아프간 지역 라디오 방송이 정보를 원하는 미군 이름을 정규적으로 방송한다." 록스는 CIA가 꽤 많은 분량의 삭제를 요구한 자신의 저서 <레프트 오브 붐>에 이렇게 공개했다. 미군도 이를 알았지만 CIA에는 알려주지 않았고 몇 년간 이 방문객들은 돈을 계속 받아갔다.


첩보 활동은 전적으로 인간관계에 달려있다. "내가 관리했던 최고의 정보원은 돈 때문에 한 게 아니었습니다." 스키너의 말이다. "그들은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구를 가졌지요. 애국심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지 뛰어난 팀의 일원이 되길 원했던 거죠."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원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신뢰할 수 있었다. 지역민들은 일상적으로 사적이거나 부족 간 다툼에서 자신의 뒤를 봐줄 미군의 힘을 원했다. "그들은 아마도 그게 자신의 나라를 돕는 길이라고 말할 겁니다. 미국인들이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걸 그들도 압니다. 그러나 사실 그건 복수일 뿐이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탈레반을 물리치고 새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CIA는 주로 알카에다 조직원을 살해하는 데 집중했다. 때로는 특수부대와 정보요원들이 함께 매우 효과적인 폭격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략 없는 전술적 성공은 의미 없었고 나머지는 스키너와 CIA 요원들 몫이었다. 그들은 아프간 마을을 폭격하는 것이 어떻게 미국 시민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또한 왜 미국 지도층은 미국의 주둔이 아프가니스탄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국가를 세우려고 했어요. 제가 지금 경찰 점호에서 듣는 것보다도 더 적은 정보를 가지고요." 스키너가 말했다. 미국의 침공 두 달이 될 때까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몰랐다고 한 메모에 밝혔다. 공습은 매번 그 전보다 더 세져 갔다. "우리가 노력할수록 상황은 나빠져 갔죠." 스키너의 말이다. "우리가 더 노력하면 할수록 더 나빠졌습니다."


현장 요원들의 평가는 워싱턴에 있는 고위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죠. '그냥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우릴 위해 여기서 죽었다'고." 스키너가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탈레반에 시간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죠. 그래서, 영원히 있겠다구요? 앞으로 하려는 게 그거냐구요? 그들은 영원히 거기 사는 사람들이라구요, 모자란 양반아."


스키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1년을 보냈다. 종종 탈레반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이후 10년간 몇 차례 되돌아갔다. 그는 방탄조끼에 메모를 보관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아내에게 이건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전해주세요."


> The Spy Who Came Home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8/05/07/the-spy-who-came-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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