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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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학 시절부터 적지 않은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가장 좋은 기분은 여행을 마치고 집이 가까워질 때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늘 혼자 배낭여행을 다녔던 것은 아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아니었을까 싶다. 1996년엔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케냐로 가서 3박 4일 정도 기차를 타고 탄자니아로 들어가기도 했다. 어디론가 쏘다니면서도 리조트 한번 안 가봤고 그 흔한 패키지도 안 해봤다. 하지만 이젠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는 탓인지 힘들게 돌아다니는 여행은 그만하고 싶다. 사실 딱히 더 이상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나이가 더 들면 아내와 크루즈 여행이나 클럽메드같이 편히 쉬면서 둘러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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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장소가 다를 뿐 일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해외 출장은 딱 두 번 갔다. 첫 출장은 2010년 네덜란드였다.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 편승한 사회협약 모델 취재였다. 회사 선배와 나는 수도인 암스테르담과 정부 기관이 모여있는 헤이그를 오가는 빠듯한 일정을 쪼개 이준 열사의 묘역을 찾기도 했다. 일과 무관했지만 선배가 가보자고 해서 따라나선 셈이다. 네덜란드만 세 번째 방문이었으나 이준 열사를 떠올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두운 데다 비까지 내려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독립운동가와의 자취는 역사를 현실로 불러오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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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22일, 고종의 특명을 받은 이준 선생은 이곳 서울역에서 출발해 부산,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로 헤이그에 이르렀습니다. 1936년 6월 4일, 스물넷의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것도 서울역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1927년 서른하나의 나이에 같은 열차로 파리를 향했습니다. 서울역은 우리 역사의 주요 무대였고 대륙으로 우리의 삶을 확장하는 출발지였습니다."


지난 3일 옛 서울역사에서 있었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 뉴스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격려사를 들으며 살짝 놀랐다. 이준 열사가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갔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저 막연히 배를 타고 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분단은 상상력마저도 가둬두었던 것이다. 끊어진 길이 열리는 상상만으로도 남북 화해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남과 북의 철도가 연결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가보고 싶다. 헤이그로 가는 이준 루트와 베를린 손기정 라인, 파리로 향하는 나혜석 노선이 생겨나면 좋겠다.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고행에 가까울 수도 있다. 비록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설레지 않을까. 여행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 jebi

    2018-07-10 00:00
    오래전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넘어오는 기차를 탔을 때 옆에 앉은 독일 청년이 어디 출신이냐고 말을 걸었지요. '코리아'라고 하니까 '그럼 이 기차 타고 돌아가는거니? ' 라고 했지요... 그때 뒤통수 한 방 맞은 느낌이었어요...기차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거였구나...그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 응 이 기차로 돌아가는 거야..'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ㅎㅎ
  • 내일

    2018-07-10 07:41
    아마도 분단 이후 세대는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섬을 대륙으로 만드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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