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벌적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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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벌어 적게 쓰기. 귀촌을 앞두고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할 때부터 빠지지 않았던 단어다. 높은 연봉이나 소비에 몰두하는, 다른 말로 많이 벌어 많이 쓰는 도시의 셈법과 다른 방향으로 걸으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자본주의 열차에서 내린 이들에게 로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삶의 현실을 위무해주는 유니콘 같은 존재랄까. 시골 내려오면서 꿈꾼 소박한 삶에 대한 희망은 자연스럽게 텃밭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먹거리 대부분을 가꾸고 키우면 완전한 자급자족은 아니더라도 생활비가 확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가계에서 푸성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오히려 시골 생활의 필수라 할 수 있는 차를 사고 유지하는 비용처럼 생각지 못한 지출이 생겨났다.


돌이켜보면 시뮬레이션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적게 버는 것은 확실한데 적게 쓰기는 쉽지 않았다. 불필요한 소비는 없고 씀씀이도 줄였다 생각했지만 결산을 해보면 빨간불이 켜지기 일쑤였다. 도시화된 소비패턴의 관성이 여기저기 스며있는 탓이다. 실전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와 조정을 거쳐 나름의 균형을 맞추는 중이다. 틀린 것은 또 있다. 푸성귀는 단순히 가계부상에 존재하는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을 먹는지가 당신을 결정한다"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먹거리는 중요하다. 하물며 직접 가꾼 채소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성서의 언어를 박신양은 영화 <약속>에서 '죄가 깊으면 은혜도 깊다'고 표현했다. 텃밭 버전으로 풀이 하면, 수고가 더할수록 수확의 기쁨은 더 크다.


콜라비를 캤다. 순무와 양배추의 교배종이라는데 첫 수확이다. 지난봄 읍내에서 몇몇 모종을 살 때 서비스로 딸려왔다. 막연히 뿌리 식물인 줄 알았는데 독특하게도 줄기 식물이다. 뿌리 위쪽 줄기가 비대해지면서 동그란 순무처럼 자란다. 옆으로도 줄기가 솟기 때문에 수확하면서 떼어낸다. 콜라비마다 자국이 있는 이유다. 양배추와 함께 심은 탓인지 배추벌레가 출몰하는 바람에 아침마다 쪼그려 앉아 일전을 벌이곤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트에 가면 전엔 안 보이던 콜라비가 눈에 들어온다. 한 개 천원이다. 수고와 견주기엔 허탈한 금액이지만 가격표가 담아내지 못하는 만족감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아내가 콜라비를 썰어 피클을 담갔다. 산지 직송이다. 내일은 새 피클을 곁들여 깻잎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적게 벌어 잘 살기다.


  • jebi

    2018-06-29 20:41
    우와~~ 콜라비 정말 신기하네요! 무와 같은 뿌리를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줄기였다니.. 전 땅콩 보고 놀랐어요. 땅콩도 뿌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줄 알았더니 노란 꽃에서 빨대 같은 것이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 땅콩이 달리더라구요...ㅎㅎ 땅콩 잎사귀도 낮에는 펴졌다가 밤에는 접더라구요...신기신기.. 내일님 말씀처럼 생각보다 생활비가 확~ 줄지 않아 살짝 당황했지만 그래도 뿌듯하고 신기하고 그런 날들이 있으니 살만 해요^^
  • 내일

    2018-06-30 07:16
    땅콩도 흥미롭군요. 텃밭이 크지 않아 심어볼 엄두도 못 내고 마을 어르신들이 나눠주시는 것만 먹었었는데 내년에는 한번 심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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