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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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의 저자인 독일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 올해가 탄생 2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그의 고향 독일 트리어에서 0유로 지폐를 발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0유로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상징한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처음 찍어낸 5000장이 다 팔려 2만 장을 더 발행했단다. 봉이 김선달 마냥 0유로짜리를 3유로에 팔았는데 누가 다 샀을까? 호기심이 동해 이베이를 찾아봤더니 경매 사이트답게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올라와 있다. 심지어 도안이 다른 카를 마르크스 0유로가 또 있다. 지난해 동독박물관에서 한발 앞서 발행했다.


좀 더 알아보니 유럽에서 0유로 지폐는 흔하다. 유로 발행 권한을 가진 유럽중앙은행 승인하에 제작되지만 화폐라기보다는 기념품이다. 어차피 액면가가 0이기 때문에 통화로서의 의미는 없다. 2015년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 인기를 끌자 다른 유럽국가들도 따라 하는 모양새다. 애초부터 관광 부양이 목적이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기념의 의미로 150종 넘게 발행했다니 이만한 관광상품도 없다. 그러고 보면 기사화된 것도 0유로가 특별한 게 아니라 마르크스라서 주목받았던 것이다. 의미는 자본주의 비판인데 현실에선 자본주의에 복무하고 있다.


한 달 전, 이베이에서 산 0유로가 오늘 도착했다. 독일도 아니고 이탈리아에서 왔다. 사고파는 일에 국경이 대수랴. 우체부 아저씨가 구겨진 봉투를 내밀기에 지폐도 구겨졌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꺼내보니 빳빳하다. 지퍼백에 넣은 후 구겨지지 말라고 딱딱한 종이를 덧댔다. 장사 좀 할 줄 아는 친구다.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뭘 그런 걸 샀나 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등짝 스매싱 당했을 일이다. 남북이 잘 풀려 평화협정이라도 체결되면 기념으로 북한과 함께 0원 지폐라도 발행해보면 어떨까 싶다. 칼 맑스도 그 정도는 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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