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적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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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는 종교개혁 500년 되는 해였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1517년에서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개신교는 크고 작은 행사를 열어 이를 기념했고 언론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돌아보는 기사를 기획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 한국에는 각 교회마다 교황이 있다"는 기사였다. <시사저널>의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 인터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교회는 500년 전보다 더 타락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정 정도 맞다. 그 당시엔 교황이 하나였는데, 지금은 교황이 각 교회마다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대형 교회는 물론이고 작은 교회도 교황 노릇하는 목사가 적지 않다."


#2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투척 갑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고구마 줄기 캐듯 온갖 비리가 춤을 추더니 급기야 집안 전체가 수사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을의 반격'으로 불리는 대한항공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의 분노도 잠들 줄 모른다. 이 사태를 진단하는 기사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지적은 새터민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의 말이었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남북문제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 그는 조현민을 "남한의 3대 세습 새끼 김정은"이라 불렀다. 그는 2년 전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권력자 혼자서 다 가지고 세습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한 100명쯤이 나눠서 세습하는 사회다."


#3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묘하게도 닮았다. 500년 전 교황을 비판했던 프로테스탄트의 후예가 교황 노릇하는 한국 개신교나 김씨 패밀리의 독재 세습을 피해 탈출한 이가 맞닥뜨린 '세습 사회' 남한의 모습이.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사상 처음 남미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본주의에 맞서 가난한 이와 난민을 껴안으며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김정은은 오늘 북한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 땅을 밟았다. 그의 손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렸다. 력사적인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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