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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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자동차 소리가 살짝 이상해졌다. 2009년식인데다 주행거리가 10만에 육박해 노쇠한 거라 여겼는데 읍내 나가는 길에 탈이 났다. 차가 쿨렁거리면서 속도가 오르지 않고 힘들어하더니 급기야 엔진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렵사리 진악산을 넘어 가까운 카센터로 직행했다. 진단 결과 점화 코일 3번과 4번의 문제로 드러났고 교체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여기까지는 흔한 차량정비 이야기다.


사실 이 차에는 고질병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앞바퀴가 물이 고인 웅덩이를 밟으면 순간적으로 기분 나쁜 잡음이 들렸다. 배터리 경고등이 켜졌다 꺼지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 물웅덩이만 지나면 아무 일 없었던 듯 정상 작동하는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밀린 숙제처럼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엔진오일 등을 갈 때마다 카센터를 바꿔가며 여러 정비사에게 물어보곤 했다. 배선 쪽 문제일 수 있다며 싹 교체해보자거나 종합정비를 권유한 이도 있었다.


가장 설득력 있던 정비사는 겉벨트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베어링과 냉각수까지 함께 교체를 권했다. 상당한 근거까지 제시한 터라 마음이 움직였으나 20만 원이라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닌 듯해서 다른 곳에서 다시 한번 검증하려고 미뤄두었는데 이번에 점화 코일을 교체하면서 그 기억이 떠올랐다. 앞서 방문했던 카센터에서처럼 증상을 설명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겉벨트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체비용은 6만 원이지만 지금 당장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말렸다. 고무로 된 벨트 특성상 조금씩 닳고 헐거워질 수밖에 없으나 우선은 벨트의 유격을 조정하면 된단다. 더 노후되면 지금처럼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라 마른 날에도 잡음이 들리게 되는데 그때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엔진 왼쪽에 있는 벨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직 쓸만하다고 하더니 렌치를 가져와 그 옆의 볼트를 조여 유격을 조정해주었다. 간단한 일이라며 비용도 받지 않았다.


그는 전문가였다. 이젠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밟아도 잡음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만난 여러 정비사 가운데 겉벨트를 원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단 두 명이었고 렌치 하나로 유격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 혹은 알려준 - 이는 그가 유일했다. 물론 돈이 들지 않아 좋은 것도 맞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적절하게 해결할 줄 아는 전문가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2017년에는 유난히 많은 얼치기 전문가들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정치인이나 법조인뿐 아니라 종교인들도 그랬다. 장사꾼 심성에 물들어 부끄러움도 잊은 이들 탓에 사회 곳곳이 초토화되었다. 새해에는 진짜 전문가들을 더 많이 만나길 기대해본다.


뱀발) 그 전문가가 일하는 곳은 양지카센터다. http://naver.me/5NOTwE4e

  • 을지로

    2018-01-01 09:13
    사실 차 정비하면서 원인을 정확히 찾았는지, 원인을 찾아도 해결책이 과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때가 적지 않았는데... 전문가를 찾은 것만이 아니라, 그런 전문가가 가까이 있다는 게 굿 뉴스~
  • 내일

    2018-01-01 11:17
    차뿐 아니라 모르는 분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을 듯해. 병원 - 특히 치과 - 처럼 다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고. 그래서 전문가가 있는 것인데 다들 자본주의하에서 자기 먹고 살기에 바빠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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