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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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뒤에 있던 낯선 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 내가 심은 것도 아니고 처음 본 나무들이다. 장미 덩굴 뒤에 숨어 있어 존재 자체를 몰랐다. 장미잎은 사그라드는데 푸른 잎사귀들이 무성해 우연히 발견했다. 자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나무라서 쉽게 뽑힐 줄 알았으나 오산이었다. 잔가시가 있어 잡기도 쉽지 않고 뿌리가 얼마나 뻗었는지 도무지 뽑혀 나오질 않았다. 쉽게 보고 달려들었다가 호미를 거쳐 괭이까지 들고 사투를 벌였다. 결국엔 약이 올라 톱을 가져다가 지면과 닿은 부분을 바짝 베어냈다. 어느새 번졌는지 열 그루는 족히 된다. 베어내고 보니 검은 열매까지 달려있다. 대체 무슨 나무인지 특유의 향까지 강하다.


비밀은 저녁에 풀렸다. 동네 산책하면서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산초나무란다. 열매가 있다고 하니 어디 있더냐고 관심을 보이셨다. 추어탕 같은 곳에 넣는다는데 기름을 짜기도 해서 내다 팔기도 한다고 하셨다. 귀한 기름으로 여겨지는 듯해 괜히 베어냈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심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나무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홀연히 등장했으니 의심스러웠을 따름이다. 5월의 여왕인 장미를 귀찮게 하는 모양새가 마뜩잖았고 우후죽순처럼 번져가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슨 나무이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열매인지 알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도시에서 자란 우리는 자연에선 바보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개는 마을 분들께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라고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지천에 널린 흔한 식물조차 모르는 것 천지인데 매번 물어보기도 멋쩍다. 사시사철 가지각색의 풀들이 자라고 비슷비슷해 보여 며칠 지나면 이름조차 잊어버리기 일쑤다. 시골에 산다고 저절로 자연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늘 아쉬움 가득한 자연맹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가 펴낸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로 2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그 가운데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이라는 나에게 딱 맞는 부제가 달린 1권을 샀다.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족집게 선생 같은 책이다. 무려 12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그만큼 풍성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382종을 선별해 비교 대상과 함께 총 760종의 식물을 소개하고 있다. 화려한 멋을 뽐내는 일반적인 식물도감과는 약간 다르다. 정체불명의 이름을 배척하고 발품을 팔아 우리의 역사를 찾아내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자연의 영혼이 담긴 바이블같다고나 할까. 언제든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꺼내 찾아볼 수 있어 문자 그대로 '보감'의 역할이 기대된다. 책값이 7만5000원이니 한글로 된 단행본으로는 내가 샀던 책 가운데 가장 비싼 듯하다. 그래서 살짝 망설였으나 나에겐 '올해의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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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물생태보감 1 -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 김종원 지음, 자연과생태 펴냄, 양장, 1200쪽, 2013

  • 관운

    2017-09-10 02:27
    산추나무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벌레들이 싫어하죠.
  • 내일

    2017-09-10 21:12
    그래서 그런지 열매도 깨끗하더라구요.
  • evangelica

    2017-10-18 20:32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하여, 누가 스마트폰으로 식물을 찍으면 바로 정보가 화면에 뜨도록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책장을 일일이 넘겨보는 게 귀찮아진 게으름이의 생각이다. 써 보진 않았지만 다음 검색엔진에 꽃 검색 기능이 있긴 한데.
  • 내일

    2017-10-19 07:22
    기술적인 부분이야 간단하겠지만, 저작권 때문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설령 저자가 저작권을 포기한다 해도 디비화하고 운영하는 비용 생각하면 광고가 덕지덕지 붙지 않을까? ㅎㅎ
  • evangelica

    2017-10-19 08:18
    그러게. 광고가 제일 성가시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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