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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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해 얻어다 심었던 몇 포기가 번지고 번져 딸기밭을 이뤘다. 겨울을 나더니 알아서 크고 스스로 자랐다. 소나무 아래 적당히 그늘진 곳이라 며칠에 한 번 물 주는 것이 전부다. 주말을 지나면서 하나씩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문제가 생겼다. 새들이 한발 앞서 맛을 보는 것이다. 덩치 큰 까치가 단골이다. 바로 위 전깃줄에 앉아 익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쪼아댄 건 다 먹기라도 하면 덜 미울 텐데 여기저기 빨갛게 익은 것만 건드려놓았다. 입맛은 다 같은 모양이다.


지난해엔 하나씩 따먹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얻은 선물 같았다. 새들과 나눠 먹지 했었는데 상황이 좀 달라졌다. 훨씬 많이 열리니 덩달아 욕심까지 커졌다. 왔다 갔다 하면서도 딸기 쪽으로만 눈이 가고 쪼아놓은 딸기를 보면 부아가 치밀었다. 뺐기고 싶지 않았고 예민해졌다. 인간관계에서도 이익이 부딪힐 때 본성이 드러나지 않던가. 자연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관대한 외지인 모드에서 벗어나 동네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서는 데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거"라는 말은 진리다. 사람이란 처지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동물이라지만 지나치게 차이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딸기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이미 까치에게 들킨 이상 그만 오길 바라기는 어렵게 됐고 본능 따라 움직이는 새를 탓할 수만도 없다. 딸기밭 위로 그물망을 씌워 접근을 차단하는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낭만과 이별하면 딸기를 구할 수 있을까?

  • ㅈㅇㅅ

    2017-05-26 08:46
    제목 근사하다, 낭만씨
  • 제비

    2017-05-26 20:58
    백만 배 동감입니다. 저도 그냥 나눠 먹지..했었지만 고라니의 습격을 받고보니 그리 되지는 않더군요..ㅎㅎ 게다가 먹지도 않으면서 다 뽑아 놓은 모종들을 보면 정말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땅콩 모종 한 판을 고라니에게 다 바쳤습니다 ㅠㅠ 맛도 보지 못한 치커리며 청경채 밭이 엉망이 되자 전의가 불타올랐습니다. 낭만과 뷰를 버리고 마당 한 가운데 울타리를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라니가 먹다 남긴 청경채 몇 포기를 먹으며 웃었습니다. ㅋ 그래도 안된다면 그냥 마음을 비워야지...하고 있습니다. 타협은 힘든걸까요? ㅎㅎㅎ
  • 내일

    2017-05-26 22:41
    거기도 그렇군요. 심심한 위로와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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