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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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골로 오면서 장만한 물건 가운데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화덕(fire pit)이다. 시골에 가면 꼭 하나 마련하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 단순히 고기를 굽기 위한 바비큐 그릴이 아니라, 나무를 태우고 불을 느낄 수 있는, 운치 있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구덩이를 파고 돌로 에워싸는 방식도 있겠으나 마당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동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을 듯했다. 시중에 판매 중인 이런 류의 화덕은 대부분 쇠로 만들어진 원형의 제품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주겠다고도 했으나 무게를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아 사양하고 여기서 만들기로 했다.


힘 있고 간결한 느낌을 살려 각진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앞과 옆, 위와 아래를 그린 후 통나무 의자의 크기를 계산해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산출했다. 바닥에 길고 좁은 불구멍을 내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막대까지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원작자는 따로 있다. 텍사스 출신의 건축가 존 폴 플로셰이(John Paul Plauché)가 디자인한 '기하학적인 화덕'(Geometric Firepit)이 원 모델이다. 오래전에 보고 핀터레스트에 저장해두었던 사진을 꺼내 본뜬 것이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 팔 것도 아니니 거장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디자인까지는 했는데 제작이 남았다. 무작정 금산읍에 있는 철공소를 찾아갔는데 다들 고개를 저었다. 농기구나 만들 수 있지 이런 물건은 대전으로 가보라고 했다. 인터넷을 뒤진 끝에 대전의 한 철공소를 찾았고 훌륭한 장인을 만날 수 있었다. 들고 간 도안을 꼼꼼히 살핀 그는 편리를 위해 손잡이를 달아주겠다고 했으나 원형을 유지하고 싶어 거절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작비가 다소 높았지만 1주일 후 받은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화덕에 불을 피우면 손님들이 한결같이 좋아했다. 불 주위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해가 저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추억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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