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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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라면버거'였다. 그게 인터넷이었는지 텔레비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롯데리아에서 라면버거를 출시했다는 광고를 봤다. 이런 류의 시도는 대부분 특이함이 전부라 기대는 안하지만 햄버거 애호가로서 한 번쯤은 먹어봐야지 싶었다. 더군다나 금산 유일의 햄버거점인 롯데리아에서 판다니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점심에 뭘 먹을까 하다 라면버거가 떠올랐다. 마침 화목난로도 꺼졌겠다, 아내도 식사 준비 전이라 타이밍이 좋았다.


오랜만에 롯데리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장날도 아닌데 읍내에 차가 많았다. 다행히 롯데리아 앞에 차 한 대 댈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꺾어 후진하는데 왼쪽에서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차의 회전각이 커서 왼쪽 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을 스친 것이다. 뒤에서 차가 오기 전에 서둘러 주차하려다 미처 왼쪽에 있는 차는 신경 쓰지 못한 탓이다. 우선 차를 골목으로 빼고 내려서 보니 사고는 내가 냈는데 내 차가 더 긁힌 듯했다.


사진에서 보듯 상대방 차는 바퀴 위 원형으로 튀어나온 부분 주위가 조금 긁혔다. 두 차가 모두 은색이라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접촉사고를 일으킨 책임은 져야 했다. 피해 차량의 운전자인 아주머니께 보험으로 처리할지 물었다. 언짢은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 하신다. 난감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분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길 바랐고 그분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기다려보라던 아주머니는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설명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꿔주었다. 전화 속의 아저씨는 전형적인 충청도 사투리로 "뭐 그 정도 가지고 어떻게 하겠어유" 하시더니 "적당히 성의 표시만 해주세유" 하신다. '적당한 성의'가 어느 정도일까. 결국, 오고 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화합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내는 살짝 속상한 눈치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가계부 쓰며 긴축정책 중인데 간만에 읍내에 나왔다 이렇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태를 일단락 짓고 롯데리아로 들어가 주문하려는데 거기서 일하는 청년이 먼저 말을 건넨다. "아, 그 아줌마 너무 하시네. 별것도 아니던데 그냥 가면 되지 뭘 돈까지..." 내가 손님이라 내 편을 들어주는 선의일게다. 가게 앞에서 일어난 일인데다 전면이 유리라 다 보고 있었던 듯했다. "오늘 비싼 햄버거 먹네요"하고 말았다. 접촉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일어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일어난 일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내 부주의함이지 상대방의 불관용은 아니다. 내가 아니라 그 아주머니가 롯데리아에 들어갔어도 그 청년은 똑같은 말을 했을까? 문제는 '적당한 성의' 혹은 '적절한 책임'의 적정성인데 모두가 동의할만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일 경우 더욱 그렇다. 가해자인 상황에서의 판단과 기준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동일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장담하기 어렵다.


#2

롯데리아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봤는데도 라면버거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롯데리아였던 것 같은데 다른 햄버거 가게와 헷갈렸나 싶어 주문받는 청년에게 물어봤다. 그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라면버거는 한정판매였는데 어제로 종료됐다'고 했다. 아.


#3

햄버거를 먹은 후 산책 겸해서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아내가 물엿이 필요하다고 해서 평상시에 잘 가지 않던 마트에 들렀다. 마침 '초특가세일'이라는 팻말과 함께 확 낮아진 가격표가 붙은 물엿이 있다. 나오는 길에 과자가 진열된 곳을 지나는데 낯선 노란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전설 속에 존재한다던 '허니버터칩'이다. 차 수리비를 잃고 허니버터칩을 얻었다. 운 총량 보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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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써니

    2015-01-15 16:35
    ㅋㅋㅋㅋㅋ 근데... 내가 만든 '허니버터칩'이 더 맛있지 않아? ^^ (진실만 말해라~~!!)
  • 내일

    2015-01-15 17:23
    Indeed! ㅎㅎ
  • 양수리

    2015-01-15 17:46
    시골사람들 읍내나왔다가 지갑 털렸네요 ㅋㅋ, 그나마 긁힌 차는 누가 위로해주지?! 저도 사고는 주행보다 주차할때가 빈번합니다. 안전주차하세요~~
  • 내일

    2015-01-16 09:08
    주인 잘 만난 덕에 트렁크에 장작 싣고 지붕에 합판 올리더니 무적 차량이 되어갑니다. ㅎㅎ
  • 작년에 사고 무지많이 경험한 1인

    2015-01-28 22:35
    이런일이 있었군. 차사고는 차사고일뿐 마음의 상처로 남지 않길 ㅎㅎ
  • 내일

    2015-01-30 22:32
    상처씩이나. ㅎㅎ 좀 더 주의하자 정도지.
  • 다다

    2015-03-31 13:12
    하하하....웃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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