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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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일이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방공포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어리바리한 신병이었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행정병으로 차출되었고 정신없이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서무계였던 사수가 제대하기 전날 밤, 그의 전역을 축하하는 환송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오래된 부대 전통에 따라 그의 직속 조수였던 내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당일에서야 알았다. 문제는 내가 음치라는 데 있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장기자랑 시간엔 어떤 이유를 대서든 조퇴를 했다. 대학에 가서도 내가 노래 비슷한 걸 흐느끼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절친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렀고 내무반장의 매서운 목소리가 나를 호명했다. 부대 왕고였던 내 사수와 부대 막내였던 나 사이의 까마득히 많은 사병들이 침상 끝에 정렬해 앉아 내 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불현듯 그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푸른 제복을 입고 외로움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던 그들 모두 이제는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지.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고 활골닷컴도 그렇다. 짐작하듯이 이 글은 활골닷컴의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글이다. 올해로 활골 생활 8년 차에 접어들기까지 활골닷컴은 세상과 소통하는 좋은 통로였다. 이곳을 통해 좋은 이들을 만났고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찍어둔 사진이나 만들고 올리지 못한 목공 작품도 있고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도 더 있어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욕심은 한이 없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었고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쉬울 때 숟가락을 놓는 일은 쉽지 않지만 스스로를 경계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다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방문객들을 위해 한 달 정도 더 열어두고 5월에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다.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둘러보시라.


전역 축하 환송회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나는 그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이등병답게 절도있게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낭송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무반에 정적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한마디씩 농담으로 추임새를 넣던 고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멀뚱멀뚱 서로 쳐다만 보았고 독사눈의 내무반장도 당황한 듯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부러운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대를 떠나는 사수의 앞날을 시로 축하해주었다. 늘 까칠하게 굴던 부대 최고참이 그 자리에서만큼은 고맙다며 미소를 보이자 분위기가 이내 누그러졌다. 그날 내가 낭송했던 오스트리아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 '누구든 떠날 때는'으로 활골닷컴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누구든 떠날 때는

- 잉게보르크 바흐만


누구든 떠날 때는
한여름에 모아둔 조개껍질이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사랑을 위하여 차린 식탁을 바다에다 뒤엎고
잔에 남은 포도주를 바닷속에 따르고
빵을 고기 떼에게 주어야 한다
피 한 방울 뿌려서 바다에 섞고
나이프를 고기 물결에 띄우고
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심장과 달과 십자가와, 그리고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언제 오는가?
묻지는 마라.


  • 강동

    2021-04-05 08:37

    그간 일상의 소소함을 느끼게 하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사진을 접하면서 또다른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즐거움이 컸음을 말해 주고 싶어.

    활골닷컴은 끝이 있으나 활골생활은 will go on ~

  • 내일

    2021-04-05 12:53

    당케!

  • jebi

    2021-04-08 08:20

    동지애(?)를 느끼며 드나들었던 곳인데..ㅠ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특히 박원순 시장님 때 고마웠어요...

    지나가는 바람결에 소식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써니님과 건강하세요^^


  • 내일

    2021-04-08 16:06

    늘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청재 모든 식구에게 안부 전합니다.

  • 사람사는 세상

    2021-04-08 20:38

    가끔 들러서 세상사는 이야기 살피곤 했는데 마지막 인사라니 많이 아쉽네요. 주인장님의 뜻이 있겠지요.

    항상 즐겁고 고마웠습니다.

    어느날 문득 생각나거든 다시 문을 열어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남겨주세요.

  • 내일

    2021-04-08 21:43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사람 사는 세상이겠지요. 인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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