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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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바디만 남았다. 렌즈들도, 플래시도, 가방도 모두 팔았다. 그동안 사진 찍을 때 사용하던 장비들로 미국에서부터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 했다. 소위 '디지털 일안 반사식'(Digital Single-Lens Reflex)이라 대체로 부피가 크고 무거운 데다 제법 큰 값을 치렀던 물건들이다. 그러나 사진 권력은 스마트기기로 넘어간 지 오래다. 여전히 상태는 좋았으나 사용 빈도가 점점 줄면서 먼지만 쌓이게 되었다. 장롱 신세가 되어 곰팡이와 벗하느니 누군가의 열정을 빛내라고 보내주었다. 한 번도 카메라 장비를 팔아본 적이 없어 잠시 망설였다. 온갖 물건이 넘쳐나는 중고나라에 올리는 것은 그동안 수고했던 전문 장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국내 최대 사진 커뮤니티라는 SLR클럽 장터에 올렸다. 직접 보고 테스트해보라고 금산이나 대전에서 직거래하자고 썼다. 과연 누가 살까 하는 생각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대략의 시세를 검색해 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더니 올리자마자 연달아 연락이 왔다.


판매자인 나는 조심스러웠으나 구매자들은 거침이 없었다. 바로 입금하더니 택배로 보내달라 했다. 그래도 물건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장터 판매 이력도 없고 처음 본, 아니 보지도 못한 나에게 뭘 믿고 그 큰돈을 보냈을까. 이래서 중고 물건 사기가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역시 우리는 신심이 깊은 민족이었다. 삽시간에 다 팔렸고 통장에 돈이 쌓였다. 다음날, 면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접수하고 운송장 사진을 찍어 구매자에게 문자로 보내기까지 채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빛나던 촬영의 중심에 있었던 바디만 남았다. 다른 장비들이야 최신식 바디에 물리면 얼마든지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으나 바디는 오래된 구형이라 어디서도 환영받기 힘든 탓이다. 그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장터에 내놓지 않았다. 내게 사진 찍는 즐거움을 알려주더니 이젠 렌즈도 없이 봉인되어 마지막까지 곁에 남게 되었다.

  • k_oregonian

    2021-03-08 05:49

    렌즈는 새 주인을 찾아 떠났고 바디는 봉인됐으나 한때의 열정과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 남겨 준 이 사진만큼은 여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잘 간직하고 있단다, ㅎㅎ.

  • 내일

    2021-03-08 22:31

    화려한 날을 뒤로 하고 명예로운 은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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